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래스카 조약 (문단 편집) == 발단 및 전개 == 당시 [[러시아 제국]]이 순전히 바보였기 때문에 이런 거래를 한 것은 아니었다. 정확한 조사 및 통계는 없었지만 알래스카에 자원이 상당하다는 분석 정도는 당시의 [[러시아 제국|러시아]]도 충분히 하고 있었다. [[http://russiafocus.co.kr/arts/2014/04/08/44269|당시에 이미 무역이 활발하게 진행됐기도 했다.]] 하지만 당시 러시아가 알래스카를 미국에 팔아치운 것은 단순히 재정난 때문만은 아니었으며 지정학적, 세력적인 여러 이유가 점철되어 '어차피 시간 지나면 영국(영국령 캐나다)에게 빼앗길 거 돈이라도 받고 미국에게 넘기자'에 가까웠다. 어떻게 보면 알래스카 구입과 비견되는 [[루이지애나 구입]]과 비슷한 케이스.[* 당시 루이지애나를 비롯한 서부 지역을 차지했던 나폴레옹의 프랑스도 본국과의 거리도 멀고 가지고 있어봤자 미국에게 빼앗기거나 지키자니 돈만 드는게 뻔했기 때문에 그냥 팔아 버리면서 처리하였다.] 당시 러시아는 영국과 지리멸렬한 [[그레이트 게임]]을 진행 중이었다. [[크림 전쟁]] 기간 동안 러시아는 [[캄차카 반도]]에서 [[영국]]과 두 번의 전쟁을 벌이면서 [[페트로파블롭스크-캄차츠키|페트로파블롭스크]] 항을 강제로 포기해야 했으며 매각 당시 바다 건너의 당시 영국령이었던 [[캐나다]]와 국경을 접한 알래스카의 방비를 전혀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. [[모스크바]]와 가깝기라도 한다면 어떻게든 알래스카 방비가 되었겠지만 문제는 험난한 시베리아를 넘어 '''7000km'''나 이격되어 있어서 직선거리 기준으로 봐도 [[서울]]에서 [[바그다드]]에 맞먹을 정도로[* 지도를 '''펼쳐보면''' 서울-바그다드 간 거리보다 모스크바-알래스카 간 거리가 훨씬 더 멀어 보이지만 이는 착각이다.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'''지구본이나 [[구글어스]]'''를 보도록 하자. 물론 직선 거리는 별로 의미가 없는 게, 그 직선 거리를 그어 보면 알겠지만 이 경로가 [[북극해]]를 관통하기 때문이다. 지금이라면 모를까 당시에 이 경로로 군대를 보내는 것은 그 군대 보고 북극 탐험 갔다 오라고 하는 격이다.] 엄청나게 멀어서 관리가 어려웠다. 알래스카 이전에도 [[러시아인]]들은 [[캘리포니아]]까지 진출해 포트 로스(Fort Ross) 요새를 건설해 [[멕시코]]의 [[스페인]] 세력과 맞닿았던 적도 있었지만 본토에서 너무 멀어 유지하기 힘들어 1842년 자진 철수했던 전력이 있다. 비슷한 맥락으로 러시아의 알래스카 경영도 한계를 보이고 있었다. 러시아도 앞서 언급했듯이 알래스카에 자원이 무진장 많다는 건 대충 알고 있었으나 알래스카 바로 옆에 캐나다를 식민지로 삼고 다스리던 적국인 영국에게 '''빼앗기는 것'''보단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고 당시 영국에 적대적인 미국에게 '''팔아치우는 것이''' 전략적으로 더 낫다고 판단했다. 즉, 당시 [[캐나다]]가 영국령이었기 때문에 알래스카는 영국이 노리기 쉬웠고 알래스카가 넘아간다면 최악의 경우 [[캄차카 반도]]를 비롯한 [[시베리아]] 동쪽까지 영국에게 빼앗길 위험이 있었다. 러시아 입장에서는 알래스카 방비는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이런 최악의 사태는 면하고자 알래스카를 떠오르던 북아메리카 지역강국이었던 미국에게 넘김으로써 '''[[완충지대|중간지대]]를 만들고자 한 것'''이었다. 결국 갖고 있어봐야 유지가 어렵다고 판단된 러시아가 영국으로부터 본토를 지키기 위해 미국에게 알래스카를 처분한 게 이 조약의 원인이라고 보면 정확하다. 미-소 [[냉전]] 때문에 잘 와닿지 않으나 당시만 하더라도 '''러시아의 [[그레이트 게임|최대 적국은 영국]]'''[* 알렉산드르2세의 차녀와 빅토리아 여왕의 차남이 혼인하여 사돈관계를 형성 하여 누그러들긴 하였다. 하지만 1874년의 일이다.]이었으며 이제 막 신생 지역강국으로 떠오르던 미국과의 관계는 딱히 나쁠 이유가 없었다는 점도 중요한 점이다. 지금의 상식으로 생각하면 '아무리 경영하기 힘들어도 그렇지 귀중한 영토를 파냐?'는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제정 시절부터 현재까지도 러시아의 중추지, 주요 도시들과 인구 밀집 지역과 곡창 지대는 대부분 '''[[우랄 산맥]] 서쪽 [[유럽 러시아]]'''에 위치하고 있었다. 당시에는 [[시베리아 횡단철도]]도 개통되지 않았기 때문에 [[러시아령 아메리카]]의 개척을 위해서는 [[동유럽]]에서부터 출발해 그 춥고도 드넓은 [[시베리아]]를 말이나 마차 같은 전근대적인 교통 수단을 사용해 건너가야 했는데 더욱이 알래스카와 러시아 시베리아 사이에는 악명 높은 [[베링 해협]]이 자리하고 있다. 선박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베링 해협의 혹독한 기후 여건은 악명이 높으며 베링해협을 넘어서 [[알래스카]]에 겨우 상륙해도 마땅한 [[교통수단]]은 전혀 없었다. 육로는 열악하기 그지 없었기 때문에 결국 해안도시간의 선박 운송에 의존하는 판국이었다. 1930년대는 되어야 알레스카에 비행기가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제서야 제대로 된 개척이 시작되었다. 알래스카보다 가깝고 땅으로 이어진 시베리아 개척도 [[백성]]들이 정착을 꺼려서 [[죄수]]들을 내보내서 겨우겨우 할 정도였는데 그보다도 더 동쪽에 위치한 지역이라니 어느 정도로 험난했을지는 뻔할 뻔자. 반면 미국 입장에서는 미국 본토와 가까웠으니 상대적으로 개척할 여지가 있었으며 시간을 들여 천천히 개척시켜 나가 그제서야 가치가 높아졌다. 이걸 보고 러시아는 왜 그렇게 못 했냐고 따져봐야 의미가 없었다. 당시 러시아 제국은 타 유럽 국가가 [[아메리카 연합국|남부맹방]]과 북부연방 사이에서 고민하던 [[남북전쟁]] 초기부터 꾸준히 [[에이브러햄 링컨]]의 미국 연방을 지지했으며 [[금]]과 같은 자원을 미국 연방에 지원하기도 했다. 미국은 이런 러시아의 지원에 대해 전쟁 이후 뭔가 갚아야 했지만 아무것도 없이 러시아한테 현금을 주기는 그렇고 수어드는 [[알래스카]] 매입을 대가로 러시아한테 돈을 지원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. 그리고 마침 러시아도 이미 재정적 한계에 부닥치던 상황이라 알래스카 매입을 대가로 남북전쟁 때 빌려줬던 자원의 대가를 받아냈다. 결국 러시아가 원하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이 알래스카로 인해 실제로 영국과 미국은 갈등을 빚기도 했다. 알래스카 지도를 보면 주노 지역이 해안을 따라 가느다랗게 뻗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. 미국은 알래스카 지역을 구입한 뒤 점차 해안 지역을 따라 영토를 더욱 확장했다. 이 알래스카 회랑 지역을 프라이팬 손잡이와 비슷하다고 해서 팬핸들(panhandle)이라고 불렀는데 이 팬핸들이 계속 확장되면서 [[캐나다 자치령|영국령 캐나다]]는 '''[[태평양]] 연안을 모조리 상실할 위기에 처했다.''' 이로 인해 영국과 캐나다는 [[1903년]] 팬핸들 문제에 대해 미국과 협정을 맺었다. [[1825년]] 영국-러시아 협정에서 불분명했던 경계선 정의("해안선에 위치한 산의 정상부를 따른다" 등)를 명확히 하여 현재의 국경선을 확정하였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